어떤 일을 하다 보면 일의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시장 조사’를 하는 경우, 사실 조사해야 하는 것은 ‘설문 조사’나 ‘여론 조사’가 아닙니다.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품(또는 기업, 브랜드)은 무엇인지, 앞으로 시장에서 미래 먹거리가 될 만한 상품은 무엇인지 조사하는 것이 시장 조사입니다. 그걸 알기 위해 주로 쓰는 방법이 설문 조사 및 여론 조사고요.
그런데 설문 조사 그 자체에 얽매여, ‘요즘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에만 몰두할 경우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 실패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일을 할 때에는 무엇보다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실무자뿐만 아니라 관리자, 나아가 대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마케터의 본질이 마케팅이고, 개발자의 본질이 개발이라면, ‘인적 자원 관리자’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바로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목적이라는 본질에 집중하여 일터를 바꾼 기업, 유니레버(Unilever)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게는 샴푸와 바디워시 도브(Dove), 연고 바셀린(Vaseline) 등으로 유명한 기업이죠.
한때 14만 9,000명이 넘는 직원에 대한 인력 관리 문제로 몸살을 앓은 유니레버가 어떻게 인적자원 관리에 성공하게 됐는지,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인적자원의 본질, ‘목적’을 분명히 하기
한때는 인적자원의 본질을 ‘연봉’으로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워라밸, 복리후생, 인적 네트워크, 커리어 등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때였죠. 하지만 요즘 세대는 다릅니다. MZ 세대는 단순히 연봉이 높다고 회사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워라밸, 직원 복지, 커리어 개발 등을 같이 봅니다.
그럼 그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표는 무엇일까요? 링크드인 설문조사에 의하면 베이비붐 세대는 오직 9%만이 회사의 가치나 미션을 중시하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 곧 젊은 세대는 86%가 회사의 가치와 미션을 중요시한다고 답변했습니다.
물론, 개인의 목표와 직업적 기대를 성취하고 싶다는 답변은 모든 연령대에서 높게 나타났고요.
이는 인적자원의 본질이 곧 ‘근로자 개인의 일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에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이미 회사의 중역이 되어가고 있는, 또 앞으로 회사에 들어올 인재들은 회사에 이러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에 답변하지 않는 회사는 인재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사례로 빅 테크 기업의 직원들이 군대와의 계약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전쟁 무기에 자신들의 노동 생산물이 들어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뜻이죠.
‘일하는 목적’은 인적자원 관리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까닭은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근로자가 회사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알 수 있게 하는 것, 이걸 인적자원 관리의 본질로 삼아야 합니다.
목적은 어떻게 업무와 연결하는가
문제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회사의 목적을 공유하는가에 있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워크숍 몇 번, 회식 몇 번으로 해결될까요? 당연히 불가능하겠죠. 목적을 업무와 연관시키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근로자 개인의 목적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유니레버는 직원들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리스킬링(reskilling)이나 업스킬링(upskilling)이라는 용어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습니다. 직원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에 맞게 발전하려고 노력하도록 장려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사례처럼 들리겠지만 만약 이직을 염두에 두는 직원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직원에게 새로운 업무 스킬을 공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연 ‘일하는 목적’을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이런 직원에게는 어떤 기업을 가고 싶은지, 왜 가고 싶은지, 우리 회사가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지 물어봐야 합니다.
이러한 소통을 거치면 회사도 직원이 원하는 (개인적인) 목적을 정확히 알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 회사의 목적을 직원에게 설득시킬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목적이 끝까지 상충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사실 그렇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어쨌든 그래도 서로의 목적은 달성된 거니까요(회사는 직원에게 회사의 목적을 공유했고, 직원은 이직이라는 목적을 달성했음).
둘째, 규모에 맞게 회사의 목적을 공유해야 합니다.
유니레버는 2009년 처음으로 개인과 회사의 목적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400명의 고위 경영진을 대상으로 4일간의 워크숍을 실시했는데, 인원이 인원인 만큼 모든 인원을 한꺼번에 참여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짜리 워크숍을 새로 만들었고, 유니레버에 입사하는 전 직원은 이 워크숍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 워크숍에서는 자신의 목적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셋째, 목적은 전체 직원에게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유니레버에도 긱 이코노미가 도입되었습니다. 정규직, 긱 노동자, 계약직 노동자, 탄력적 근무자, 프리랜서 등 수많은 근로자가 뒤섞인 업무가 8만 개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니레버는 직책과 업무 형태에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를 위한 ‘공동 채용 관리’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프리랜서라도, 긱 노동자라도 유니레버가 자신의 가치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다음 프로젝트에 또 지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유니레버는 U-워크(U-work)를 추진하기도 했는데요. 1년에 정해진 몇 주 동안 유니레버에서 단기과제를 하기로 약정하면 (긱 노동자의 기본 형태인 only 인센티브가 아닌) 기본 급여를 지급받습니다.
수많은 형태의 근로자들을 하나의 목적으로 묶기 위해 경제적인 불안 요소를 제거한 것이죠. U-워크를 통해 유니레버는 수많은 형태의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
목적을 공유하는 것이 인적 관리의 본질이 된다는 사실은 인력 감축에서도 드러납니다. 유니레버는 100여 년 간 존속하면서 종종 인력 감축의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요. 공장의 자동화로 해고하는 대신, 노동자들이 사내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거나 회사 밖에서 비슷한 일자리를 구하거나 조기 퇴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는 유니레버가 ‘근로자 및 회사의 목적’을 계속해서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월마트와 공동으로 파트너십을 맺어 두 회사 안에서 가능한 커리어 경로를 탐색했습니다. 근로자와 회사의 목적을 완전히 일치시킬 수 없다면, 비슷한 업종의 회사와 일치시키는 것도 괜찮은 법이죠.
다시 강조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유니레버의 인적자원 관리는 그 본질인 ‘회사의 목적을 근로자와 공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결과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으며 인적자원 관리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100년 된 기업도 이러할진대, 이제 막 창업했거나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리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라면 본질을 놓쳐선 안 되겠죠? ‘모든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것’에 집중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