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에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노동계와 경영계에서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경영자들은 해당 판례를 근거로 퇴직자와 재직자들이 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 같다고 전망하고, 노동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임금피크제가 폐지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위법’ 판례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임금피크제 자체가 위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판례의 진실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임금피크제가 무엇인지 간략히 설명해 드리면, 정년을 보장 받거나 연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입니다. 가령 정년이 58세인 경우, 60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임금을 20% 삭감하는 식이죠. 그리고 삭감된 임금만큼 신입사원을 채용함으로써, 고령 근로자는 정년을 보장 받고 사내의 신규 채용 인원은 늘리는 정책입니다.
국내에서는 2013년 정년을 만 60세로 늘리는 정년연장법이 통과된 후 2015년 말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2021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의하면 300인 이상 사업체 중 약 53%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습니다.
임금피크제 = 무조건 위법?
그런데 이번 판결은 임금피크제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판결한 걸까요? 일단 임금피크제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판결한 것은 아닙니다. 쟁점이 된 부분은 바로 ‘연령 차별’ 부분이었습니다.
우선 임금피크제의 목표 중 하나는 ‘경영혁신과 경영효율 제고’입니다. 부담스러운 고연령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신규 인원을 채용하거나 더 효율적인 투자에 쓰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임금을 삭감하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판결에서 피고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에 비해 떨어졌다고 합니다. 즉, 임금피크제의 대상이 된 사람들(피고)의 실적이 임금피크제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보다 좋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일괄적으로 ‘연령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임금피크제를 통해 임금을 삭감한 점, 또한 임금을 삭감한 뒤 근로자의 업무량이 감소되지 않았다는 점 등은 분명히 ‘연령 차별’에 해당하죠. 경영혁신이나 경영효율 제고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연령에 따라 일제히 임금을 삭감한 것에 불과했던 겁니다.
대법원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해 ‘위법’이라 판단했습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의 목적과 근로자들이 입은 불이익의 정도, 임금을 삭감하는 대상을 선정할 때의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여부 등을 고려했을 때 ‘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정년연장형은 위법이 아닙니다
임금피크제가 무조건 위법은 아니라는 사실은 다른 판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차별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낸 2020년 판례인데요. 이 판례에는 여러 쟁점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앞서 얘기한) ‘차별금지원칙’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고령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여 정년을 보장(연장)해 주었고, 또 삭감으로 마련된 재원은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금액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에 따라 차별’한 임금피크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임금피크제가 반드시 위법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제도 도입의 취지와 목적을 성실히 이행했다면 위법이 아니고, 만약 여기서 벗어났다면 위법으로 판결 받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노동법 이슈는 매년, 매월, 매일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열심히 챙겨 보지 않으면 놓치고 지나가는 이슈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바쁘다고, 혹은 귀찮다고 대충 들여다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이번 판례에 있습니다. 성급히 ‘모든 임금피크제가 위법이다’라고 결론 내리는 건 큰 실수일 테니까요.
어떤 경우에도 노동법 이슈를 면밀하고 꼼꼼히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시길 당부 드립니다.